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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에 대한 두 가지 의제공부 2024. 9. 21. 13:42
Insight - 2 distinct agendas surrounding the “Damunhwa”
첫 번째는 다문화 stigma다. 다문화인, 특정 국적 외국인 등에 대한 특정 프레임을 만들어서 그걸 재생산하고 재생산해서 그걸 모두에게 주입시킨다.
재생산의 주체는 댓글달고 말하는 일반 시민들, 영화 드라마 광고 등을 통해 표현하는 매체, 심지어는 다문화 교육 자료에까지 그런 관점을 반영하는 다문화교육 그 자체가 되겠다.
이들을 타자화하며 한국인인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불쌍한 ‘저들’을 도와주자는 것. 이미 낮추어 보는 관점.
이것의 문제는 그 카테고리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모두 예의없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틀로 이해하려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나고자란 나에게 여전히 한국어를 잘한다고 하거나, 자기가 아는 외국인과 나를 비교하거나 하는 터무니없는 것들이다.
자신들이 알고있는 ‘다문화’에 나를 대입해서 이해하려 하고,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이건 정말 너무 짜증나는데 매번 짚고 넘어가기도 뭣하다.
일상적 차별이나 미세차별이라고도 하는 Microaggression이 그런 행태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올해 다문화 학회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한참 하고 난 뒤에, 뒤풀이 자리에서 한 장학사님과 진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장학사님이 “이제 거기에서 벗어나 한 단계 나아갈 때가 된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즉, 내가 계속 이야기한 것은 자꾸 타자가 아닌 나를 타자로 바라보려 하니 너무 불편하다, 타자화하지 말아라! 였는데
장학사님은 타자여도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였다.
당시에 그 말을 듣고 복잡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내 말도 맞는데?
약간 내가 말한 논의는 하나 앞 단계고, 이제 거기에서 더 elevate된 논의가 다양성을 포용하자의 논의인 것 같은데
일부 맞는 말인 것 같긴 한데 근데 내 말도 중요하다는 걸 난 삶으로 체험해서 알았기에
되게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뭔가 뾰족한 답은 없었지만.
그러다가 오늘 이런 칼럼을 읽게 됐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321780공익광고협의회의 다문화 광고는 왜 실패작인가[위근우의 리플레이]
| 위근우 칼럼니스트 매운 떡볶이를 잘 먹거나, 한국어로 트로트를 부르거나. 지난 1~2개월 사이 공익광고협의회에서 만들고 TV에서 방영 중인 ‘다문화Ⅰ: 이주배경청소년’ ‘다문화Ⅱ: 이주배
n.news.naver.com
공익광고협의회에서 만든 우리는 모두 같다는 다문화 광고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칼럼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이다.
다른 피부색과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를 게 없는 인간이라는 동질성을 강조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으로 유효할 수 있다.
(중략)
나와 다른 인종, 문화권, 혹은 성적 지향을 지닌 이들에게도 이러한 느슨한 보편성이 있다는 감각은 상대를 나와 같은 공통의 인간이자 시민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중략)
문화 혹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인정을 중요시하는 소위 신좌파와의 논쟁에서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이하는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에서 인용) 특정 범주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문화적 차이보단 인간으로서의 공통성에 집중하는 게 더 쉽고 유용하다고 말한다. “그들도 자식이나 부모에 대해 크게 걱정하고, 똑같이 자기 의심에 사로잡히며, 모멸당하면 자신감을 상실할 수 있다고 이해시키는 것”이, “그들이 인생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이동할 때 다른 모든 사람과 동일한 어려움을 겪는다고 강조하는 것”이 타자이자 낙인찍힌 자로서의 ‘그들’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동등하게 받아들이는 더 실용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실용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공익 캠페인은 미심쩍다. 이 광고는 혐오와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계기로서의 공통성을 탐구하고 재현해내기보단, 애초에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계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공통성을 노력 없이 선취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과 ‘우리’를 연결할 가교를 놓는 대신 이미 ‘우리’에 속할 법한 이들을 편의적으로 재현한다. (칼럼 본문 인용)
이어서 칼럼에서는 광고에서 재현되지 않은 <<진짜 우리랑 다르게 살고 있는 이주배경인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떡볶이를 잘 먹는 외국인이 아니라 종교적 이유로 급식을 먹지 못하는 무슬림 아이, 남들과 똑같이 커피타임을 즐기고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외국인이 아니라 초과노동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과 같이 <<현존하는 갈등과 불편함>>은 삭제했다는 것이다. 즉, 현실과 유리된 기만적 재현을 비판한다.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이웃의 모습을 재현하고 그들만을 ‘우리’로 호명할 때, 불편한 이웃은 ‘우리’의 자격을 얻지 못한다. 본인들의 문화를 고수하는 이들, 한국어에 서툰 이들, 이주노동자로서 겪는 착취에 항의하는 이들은 한국을 존중하지 않고, 게을러서 한국어를 배우지도 않으며, 고국보다 많이 벌면서 불만만 많은 공동체의 적으로 형상화된다. 착취와 임금 체불 때문에 이탈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나 공교육에 편입하지 못하는 미등록 아동은 말할 것도 없다. 하여 그들에겐 ‘우리’에 속할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차별이 정당화된다. (칼럼 본문 인용)
이 칼럼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앞서 이야기한 다문화의 첫 번째 문제, 나의 문제 제기는 이미 내집단에 소속된 내가, 다문화라는 이유로 내집단 바깥의 사람으로 보아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시정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건 나만이 겪는게 아닌 수많은 다문화가정 자녀들, 청년들이 겪는 불편함이고, 내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것은 내집단 바깥의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한다. 전체를 아우르지 못한다. 특권적 삶을 살아온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한 부분이고, 결국 나는 특권적 위치에서 내가 겪은 다문화에 대한 불편함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럼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다문화의 두 번째 의제, 궁극적으로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의제는 무엇인가, 하면’ 우리‘라는 내집단 바깥의 폭력에 방치된 이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을 인정하고, 시정하자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 앞에서 거의 좌절, 절망한다. 왜냐면 이 벽은 너무 철저하고 단단해서 부서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부끄럽게도, 나도 어느정도 그 벽을 내면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세운 ’우리‘라는 집단 바깥에 누가 위치하는지를 한번 곰곰이 따져 보자.
전에 내가 썼던 글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집단의 경계는 결코 외국인인지 아닌지, 외모가 다른지 아닌지, 피부색이 어떤지가 기준이 아니다. 철저하고 못되처먹고 뿌리깊은 ’부자냐 거지냐‘의 사회경제적 계층이 바로 그 기준이다.
토종 한국인이라도 행색이 초라한 사람은 쉽게 무시한다. 사회경제적 계층이 낮은 한국인 가정에게도 “애는 왜 낳아” 이런 말도 서슴없이 오간다.
물론, 국적이나 피부색도 당연히 영향을 준다. 근데 그 국적이나 피부색도 결국에는 그 국가나 피부색에 대해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경제적 계층의 이미지가 강하게 결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교육받은 부자 이미지로 각인된 금발의 백인 남성한테는 주눅이나 들지, 그냥 조용히 지나간다고 해서 잘 무시하지 않는다.
이 강력한 사회경제적 기준을 잣대로 한 폭력과 무시는 정말 잔인하다. 그렇지만 너무 갑갑하게도, 난 거기에서 꼭대기까진 아니더라도 위쪽에 있고 싶다. 내 가족과 미래의 자식이 위쪽에 위치하면 좋겠다. 물론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을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근데 정말 무시하지 않을까? 내 남편도 공장에서 일한다. 우리 가족도 뭐 대대로 엄청 부자였고 고등교육 많이 받은 그런 사람들도 아니다. 근데 그래도 내가 진짜 100퍼센트 솔직하게 모든 상황에서 그들을 무시하지 않는다고, 진짜 우린 동등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나?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솔직히 그렇지 않은 상황도 있다. 그래서 모르겠다.'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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